이휘향 남편 김두조-조폭 출신 사업가의 죽음! 이휘향 김두조 러브스토리..원래 여자 연예인들은 조직폭력배와 연관이 깊습니다
1982년 데뷔한 이휘향은 포항지역 사업가 김두조를 만나 결혼합니다. 이휘향은 당시 23살의 신인 연기자였고, 김두조는 42살의 전직 조폭 출신 사업가였습니다. 두 사람은 영화배우 문오장의 소개로 만났지만, 이휘향이 김두조에게 납치되었다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습니다(이휘향 남편 루머). 결국 두 사람은 결혼을 하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어려운 시간을 겪었고 결혼식을 치르고 바닷가 옆에 텐트를 치고 살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휘향은 나중에 이 아들과의 루머에 대해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휘향은 "외국에서 아들이랑 같이 다니며 오해받은 적이 많다. 휴양지에서도 아들과 다정하게 다니니까 이휘향이 젊은 남자랑 바닷가에 왔다며 한국 교민들 사이에 소문이 이상하게 났다. 바닷가에 가면 더 편하게 아들한테 보조를 맞춰 입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보일 것이다." 물론 김도현은 영국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이휘향이 젊은 남자와 불륜, 외도 등의 루머가 돌기도 했습니다.
이휘향 남편인 김두조는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주먹으로 성장한 경북 포항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지역 언론에서는 그를 소개할 때 "밤의 황태자"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휘향과 결혼하고 나서 김두조는 예전의 일에서 손을 떼고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사업가로서 성장하면서 포항권투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세계 챔피언 백종권 선수를 배출하였으며, 경호 체육에 대한 조예도 남달라 세계무술경호 경북본부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포항 성모자애원, 사랑의 아가페 등에서 몇십 년간 봉사활동을 하였으며, 청송감호소 등 교정시설에서 위로 공연을 주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법무부 장관 표창을 총 3번 받게 되었습니다.
2001년에는 자신이 소유한 임곡휴게소 부동산과 30여년간 모아온 문화유물 5천여 점을 모두 한동대학교에 기증하였습니다. 이 기증은 40억원 상당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휘향씨는 남편이 기증을 결심한 데 대해 적극 찬성하고 계십니다.
"남편이 평생 쌓아온 재산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서 기부하게 되어 기쁘다. 작은 기부라도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요."
사실 이렇게 평생 쌓아온 재산을 기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김두조씨는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김두조씨: "인생은 담배 연기처럼 금방 사라지는 것이다. 언제든지 남들과 함께 살 수 있다면 그게 내 인생의 목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일 거야."
또한 김두조씨는 예술적인 감각도 뛰어나셨습니다.
김두조씨는 포항에서 사업을 하시면서, 부인인 이휘향씨는 서울에서 연기를 하시면서, 오랜 기간 동안 주말에 부부 생활을 즐기셨습니다.
이휘향과 함께 찍은 김두조 젊었을 때의 사진입니다.
김두조는 자신의 마음을 담은 노래 '주말부부', 바닷가 감성을 담은 '아주까리 부두', '영일만 디스코' 등과 '산다는 게 꿈이라네' 앨범을 5장이나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에는 거칠게 살아왔지만, 음악적인 감성도 풍부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에 교육을 충분히 받았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김두조는 잠깐이나마 가수로 활동하면서 작곡가 박성훈, 가수 설운도, 조영남 등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부인 이휘향의 소개로 유퉁, 유동근·전인화 부부 등과도 가깝게 지냈습니다.
특히 김두조와 유퉁과의 인연은 유명합니다.
유퉁: "내가 방황하던 20대에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주먹왕’이라는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 끌려 무작정 형님(김두조)을 찾아갔다. 부산에서 포항까지 몇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형님이 운영하던 체육관에 도착해 “얼굴이라도 뵙고 싶어 찾아왔다”고 했더니 형님이 따끈하게 밥부터 먹여주었다."
유퉁: "원래 형님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당시에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거두고 있었다. ‘인간이 되자, 서로 사랑하자, 참자, 그리고 효도하자’라는 관훈을 내걸고 아이들의 새 삶을 이끄는 형님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사나이는 바로 이런 모습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죠."
유퉁: "결국 나도 새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건달생활을 청산하게 됐다."
김두조씨는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삶이 어려운 아이들을 구제한 것이 크게 칭찬받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김두조씨는 자선사업을 하다가 2008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휘향씨는 "평소에 기침증세가 있어 포항 병원에서 진단 받았지만 별 다른 이상이 없었는데, 기침이 계속되어 지난 5월 서울에서 다시 진단을 받았을 때 간암세포가 전이되어 치료가 불가능했다"고 말했습니다.
김두조씨의 친구는 "실제로 그는 자선 후유증 때문에 사망하였습니다. 형님이 돌아가시기 3달 전, 그는 자신의 가슴에 송곳을 직접 찔러 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직접 병문안을 가서 상처를 보고 충격받은 우리는 그 이유를 물었더니, 형이 분노에 찬 상태에서 송곳으로 가슴을 찔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그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자선 후유증까지 겹쳐 결국 세상을 떠나신 것 같습니다." (김두조씨의 사망 원인은 폐암과 간경화, 그리고 가슴 상처입니다.) (이휘향씨의 사별 이유는 남편의 사망입니다.)
아마도 김두조씨가 어렸을 때의 체질이 여전히 남아있었던 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결국 김두조씨는 2008년 9월 세상을 떠나기 전, 조금 기이한 유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김두조씨: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고 가능한 한 조용히 장례를 치러달라."
인생을 담배 연기에 비유하며, 조용히 세상을 떠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휘향씨는 "우리 아버지(이휘향씨의 남편)는 알면 알수록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우리와 함께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휘향은 데뷔 이래 자신의 가정사에 대해 한 번도 인터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전직 조폭 출신이었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납치부터 시작해서 이혼, 재혼, 전남편 등의 갖가지 루머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자신과 남편이 만나게 된 경위와 지나온 삶을 토론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휘향은 김두조와 30년 이상 결혼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인생을 '담배 연기'에 비유하며,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으며, 자신의 죽음마저도 조용히 묻히길 바란 사람에게 '세간의 평가' 따위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홀로 남겨진 이휘향이 안타깝습니다. 인터뷰를 피하면서 "그 사람도 나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다."라는 방어적인 말에서 그간의 마음고생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